‘이런기획’ 이런스포츠 이런-FILE 제1탄 대한민국 복싱의 불투명한 미래 대안은 없나?

아무도 몰랐지만 아무도 관심 없었던 지난 시대 스포츠인의 애환, 아픔, 재조명

이런뉴스(e-runnews) 김삼성 기자 |

 

 

아직도 선수들은 목마르다 왜? 우물이 없으니까, 스스로 포기해야 했던 우리 시대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지금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1986년은 한국은 아마추어 복싱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84년 LA 올림픽 때 당한 편파 판정으로 이를 악물었던 한국의 복싱은 당시 86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어디에 내놔도 밀리지 않을 선수들을 발굴, 훈련 시키고 다듬어 아시안게임 복싱 역사상 12체급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웠고 앞으로 100만 년이 지나도 절대로 깨지지 않을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물론 단 2개국 출전만 허용한다면 깨어 질수도...

 

한국 복싱의 역사는 이례적으로 당시 작고 보잘것없는 나라라는 인식에 허덕였던 한국에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 역할을 해 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라가 힘들 때 흑백 TV 앞에 모여 화면에 나오는 복싱선수들의 파이팅에 온 국민이 울고 웃고 했던 건 아마도 1956년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16회 멜버른 올림픽’에 복싱 밴텀급으로 출전해 은메달을 딴 고 송순천 선수로 인해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당시 한국전쟁이 끝나고 몇몇 나라에 의해 뿔뿔이 흩어진 한국에서 올림픽에 나가 그 많은 설움을 딛고 메달을 획득한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지도 않은 그냥 기적 그 자체였다.

 

그 이후로 한국 복싱은 88년 서울 올림픽 김광선님 박시헌님이 금메달을 획득했고 88년 이후 92년 바르셀로나에서 동메달 두 개에 그친 가운데 이후의 한국 복싱은 12년 만인 2014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2 은메달 3 동메달 1개를 끝으로 거의 전멸했다고 봐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매우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아마추어 복싱의 유망주들은 변하지 않는 체육계의 벽에 막혀 갈 곳을 잃은 채 쉽게 포기하고 돌아서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 또한 현실이다. 지금은 시대가 좋아져서 옛날 같지 않다지만 요즘 멘탈코치 *** 이란 드라마를 보면 아직도 피땀 흘리는 선수들을 이용하고 자기 욕심에 선수들 앞날을 훼방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물론 드라마 내용일 뿐이라고 하지만 2022년 지금에도 우리 선수들은 온갖 차별과 나는 없음을 이겨내고 있는 게 88년 92년 이후의 한국 아마추어 복싱의 현주소다.

 

한때 유망주였던 어떤 이들, 운동 외엔 내가 무얼 할 수 있는지 두려웠던 이들, 지금은 전혀 다른 일로 또 다른 사회의 일원으로 녹아 옛 추억만 간직한 채 살고 있다. 한국 복싱계가 예전의 방식이 아닌 현재의 걸맞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다면, 92년 바르셀로나에 이어 96년 애틀랜타까지 2년 연속 복싱 메달을 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 후 후배 양성에 힘쓰는 어떤 이들을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이미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 2022년이 됐고 여전히 선수들은 한가지 목표를 위해 나를 희생하고 있다.

 

오랜 시간 아마추어 복싱, 또는 프로에 몸담았던 이들은 현재 파킨슨병 같은 뇌 질환과 뇌출혈이 정상적인 사람보다 빨리 발병할 위험성도 있어 걱정 근심에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대로 전국체전 우승 후 목표를 국제대회 메달을 보고 훈련에 임하며, 프로의 경우 신인왕전 우승 후 한국과 동양을 거쳐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아마추어나 프로나 뒷받침이 없으면 거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인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경기에 임한다. 이로 인한 후유증이 일반인보다 더욱 빨리 나타나며, 그나마 이가 빨리 상하는 정도를 다행이라 여길 정도다.

 

특히 1982년 WBA 라이트급 세계 챔피언에 도전했다가 26세의 젊디젊은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고 김득구 선수, 2008년 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이었던 고 최요삼(향년34세) 선수 등이 누적된 타격으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해 전 세계적으로 복싱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고 알려진다. 그만큼 위험성이 높은 경기를 하며, 자신을 희생한 한국의 모든 복싱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슬픈 감사를 표한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의 편파판정과 같은 억울함을 극복하기 위해 1986년 아시안게임에 진짜 실력 있는 선수를 발굴해 보란 듯 복싱 12체급을 석권한 한국의 저력이 다시 살아나 차별 없는 선수 육성의 우물과 능력 있는 선수 배출의 우물을 파서 목마른 한국에 또다시 아마추어 복싱을 넘어 프로에서도 세계 챔피언이 탄생해 복싱 강국의 위상을 살려 목을 축일 그날을 기대하며, 이런스포츠 이런-FILE은 계속 된다.

 

한편, 한국에 복싱 단체는 여러 개 있지만 서로 간 이해타산만 생각할 뿐 진정 한국 복싱의 미래에 관심은 여전히 조금 부족하다는 평가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한국 복싱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남아있는 복싱 단체들이 힘을 모아 선수 육성에 현대식 교육체계를 도입해 스타 선수를 발굴하고, 정당한 티켓 판매 등으로 흥행 스포츠 역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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